[기자수첩] 청사 위치보다 중요한 건 ‘실익’… 광주·전남, ‘건물’ 말고 ‘기능’을 나눠라
광주·전남 행정통합 논의가 26일, 강기정 광주시장의 “통합청사 광주 사수” 발언으로 벼랑 끝에 섰다. 당초 ‘청사는 무안(전남), 명칭은 광주’라는 이른바 빅딜(Big Deal)이 성사되는 듯했으나, 하루 만에 판이 뒤집힌 것이다. 전남도는 즉각 “신의를 저버린 처사”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고, 순항하던 통합 열차는 멈춰 설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지금의 갈등을 단순히 지역 이기주의나 정치적 샅바 싸움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양측이 내세우는 명분 뒤에는 지역민들의 생존과 직결된 공포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소모적인 ‘건물(청사) 위치’ 논쟁을 넘어, ‘기능과 예산’을 나누는 새로운 셈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본지는 앞서 이번 통합 논의의 위험 요소를 분석한 바 있다. 현재 상황을 더 깊이 이해하려면 아래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 [관련기사] 광주전남 통합 ‘빅딜’이 위험한 5가지 이유 (다시 보기)

광주의 ‘트라우마’ vs 전남의 ‘흡수 공포’
강 시장이 “청사는 양보할 수 없다”며 배수진을 친 배경에는 광주 원도심의 아픈 역사가 있다. 2005년 전남도청이 광주 동구 금남로를 떠나 무안 남악신도시로 이전한 이후, 광주 구도심은 급격한 공동화(空洞化)를 겪었다. 상권은 붕괴했고 인구는 빠져나갔다. 광주 시민들에게 “기관이 떠나면 도시가 죽는다”는 것은 막연한 우려가 아닌, 20년간 목격해 온 ‘학습된 트라우마’다.
반면 전남 도민들의 공포 또한 실존적이다. 인구와 경제력, 인프라 등 모든 면에서 압도적 우위에 있는 광주가 행정의 심장인 청사마저 가져간다면, 이는 ‘대등한 통합’이 아닌 ‘광주로의 흡수’가 될 것이 자명하다. 전남 입장에서 청사 사수는 단순한 자존심 싸움이 아니라,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한 최후의 보루인 셈이다.
건물은 ‘하드웨어’일 뿐, 핵심은 ‘소프트웨어’다
도시 계획과 부동산 가치 측면에서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과연 청사라는 ‘건물’ 자체가 만병통치약일까? 건물 관점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외관이 아니라 그 안을 채우는 ‘테넌트(Tenant·임차인)’의 질과 유동성이다.
대구·경북 행정통합이 난항을 겪는 이유도 결국 청사 위치라는 물리적 거점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현대 행정에서 청사는 상징성일 뿐, 실제 도시를 먹여 살리는 것은 예산 편성권, 국책 사업 유치권, 그리고 산업 배치의 권한이다.
광주가 만약 통합 청사(본청)의 위치를 양보한다면, 대신 그에 상응하는 확실한 ‘경제적 실리’를 챙겨오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단순히 “이름을 줄 테니 청사를 다오”라는 식의 1차원적 빅딜은 감정 싸움만 유발할 뿐이다. 이는 비즈니스 협상에서도 하수(下手)나 쓰는 방식이다.
“통합의 목적은 누구 하나가 죽고 사는 것이 아니라, 파이를 키워 나누는 것이다. 지금처럼 ‘청사 몰빵’ 게임을 지속하면, 통합되더라도 후유증으로 인해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

‘기능 분산’이라는 제3의 길
이제는 ‘제로섬(Zero-sum)’ 게임을 멈추고,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포지티브섬(Positive-sum)’ 게임으로 전환해야 한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기능 분산형 통합 모델’을 제안한다.
- ① 상징과 균형은 전남으로: 통합 청사(본청)는 전남(무안)이나 제3의 지점에 두어 균형 발전의 상징성을 확보하고 전남의 소외론을 잠재운다.
- ② 경제와 효율은 광주로: 대신 경제, 산업, 도시 계획을 총괄하는 핵심 부서와 산하 기관들은 광주에 집중 배치하여 행정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 ③ 예산의 전략적 배분: 광주 원도심 활성화를 위한 별도의 ‘도심 재생 특별 회계’를 편성하여, 청사 부재로 인한 우려를 실질적인 자본 투입으로 해소한다.
강기정 시장의 우려대로 도심 공동화는 막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을 막는 방법이 반드시 ‘청사 건물’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4차 산업 관련 기업 유치나 복합 문화 공간 조성을 위한 대규모 예산 지원이 청사 하나보다 더 큰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진정한 통합은 한쪽이 모든 것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다. 서로가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을 상대방이 채워주는 것이다. 지금은 청사라는 ‘하드웨어’ 싸움에 매몰될 때가 아니라, 통합 이후 광주와 전남이 어떻게 먹고살 것인지 미래 먹거리라는 ‘소프트웨어’를 나누는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시·도민은 싸우는 통합이 아니라, 잘 사는 통합을 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