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에세이] 새벽 1시, 잠들지 못하는 가장(家長)들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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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에세이] ‘텅텅텅’ 신문 던져지는 소리에 깨어나는, 어느 가장의 새벽

부제: 지방의 한 신문유통원 24시… “가족의 생계를 등에 업고 달리는 이들의 정직한 땀방울”

도시의 불빛이 하나둘 꺼질 무렵, 지방의 한 신문유통원 셔터는 비명처럼 차가운 소리를 내며 올라간다. 새벽 1시. 적막을 깨는 첫 번째 소리는 ‘텅텅텅’ 하고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묵직한 신문 뭉치들의 타격음이다. 일찍 출근한 직원들은 잉크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신문을 받아 들고 곧바로 ‘샥샥샥’ 소리를 내며 삽지 작업에 들어간다. 전단지를 끼워 넣는 그 기민한 손길은 마치 오늘 하루를 무사히 살아내겠다는 필사적인 다짐처럼 들리기도 한다.

반면, 느지막이 출근하는 이들은 센터를 감도는 기묘한 고요함과 마주한다. 폭풍 같은 삽지 작업이 끝나고 모두가 현장으로 흩어진 뒤, 텅 빈 사무실 한편에서는 낡은 온풍기나 선풍기 소리만이 조용히 남은 자들을 반긴다. 그 고요한 소음 속에서 나는 문득 생각한다. 이 차가운 새벽 공기를 뚫고 나간 나의 동료들이 오늘 밤에도 부디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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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학원비는 벌어야죠”라는 말의 무게

불과 몇 개월 전의 일이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 유통원에서 일하던 한 직원이 배달 도중 쓰러졌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낮에는 마트에서 15시간씩 강행군을 하고, 새벽에는 다시 신문을 돌리던 ‘쓰리잡’ 가장이었다. 밀려드는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 3일 동안 단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집을 나섰다가 결국 몸이 비명을 지른 것이다.

그날 새벽, 나와 소장은 병원으로 달려가는 대신 그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신문 뭉치를 차에 실었다. 수 시간을 헤매며 아파트 복도를 달리는 동안,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마다 그 직원의 거친 손마디가 생각나 울컥했다. “둘째가 태어났으니 일 좀 더 주십시오”라던 젊은 아빠, 요양보호사와 식당일을 병행하며 3시간만 자고도 웃으며 출근하던 친구… 그들이 짊어진 것은 종이 신문이 아니라, 포기할 수 없는 삶의 희망이었다.

신문을 돌리다 보면 세월의 변화가 손바닥으로 전해진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신문은 집집마다 배달되는 공기와 같은 존재였다. 인터넷 뉴스가 귀하던 시절, 주말 신문은 그 안에 든 전단지 뭉치가 본지보다 더 두꺼울 때가 많았다. 기계로 삽지를 해도 시간이 모자랐고, 덕분에 유통원 곳간도 넉넉했던 ‘황금기’였다.

세상은 변했고 신문은 얇아졌다. 하지만 새벽 5시, 모든 배달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마주하는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치열하다. 신문을 다 돌리고 빈 차로 돌아올 때쯤이면, 이제 막 하루를 시작하려 대문을 나서는 또 다른 ‘새벽 사람들’과 마주친다. 가끔은 술에 취해 길거리에서 잠든 이들을 보며 쓴웃음을 짓기도 하고, 혹시나 사고가 날까 경찰에 신고하며 마음을 졸이기도 한다. 그 혼돈과 활기가 뒤섞인 거리를 보며 나는 비로소 안도한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누군가의 아침을 깨웠다는 안도감이다.

“잉크 냄새가 땀 냄새로 변하는 새벽의 정직함을 믿습니다. 남도인사이트의 모든 기사는 그 땀방울 위에서 쓰입니다.”

내가 디지털 신문 ‘남도인사이트’를 창간한 이유는 명확하다. 새벽 1시부터 5시까지, 가족을 위해 3시간의 쪽잠을 선택하는 우리 직원들의 성실함이 헛되지 않음을 뉴스로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종이 신문이든 스마트폰 속 기사든, 결국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화려한 수식어가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진실’이다.

날이 밝으면 나는 잉크 묻은 손을 씻고 다시 키보드 앞에 앉는다. 연말이면 고생한다며 10만 원을 쥐여주시던 어느 할아버지의 따뜻한 온정을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오늘도 3시간을 자고 요양보호사로, 과외 교사로 달려갈 내 동료들의 명예를 위해. 나는 내일 새벽에도 묵묵히,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뉴스를 배송할 것이다.

[글: 남도인사이트 발행인 서승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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